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Last Tango in Paris
나의 이야기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누군가와 탱고를 추고 싶어진다.
(비록 탱고를 추어 본 적도 배운 적도 한번도 없지만..--;)
모든것을 벗어나... 그렇게....
밤이 새도록...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Story
세느강 위를 달리는 열차, 교각 아래 한 중년의 신사(폴, Paul: 마론 브란도 분)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그 남자 뒤로 걸어오는 젊은 여인(잔느, Jeanne: 마리아 슈나이더 분)은 그의 눈물을 보지만 그냥 지나치고 그 역시 무관심하게 스쳐간다.
영화감독인 약혼자 폴((Tom: 쟝-피에르 러드 분)에게 전화를 걸려고 들어가던 잔느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폴과 다시 마주친다. 얼마후 그 둘은 허름하지만 오래되어 다소 운치가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또 마주친다. 집과 가구를 둘러보는 잔느를 벽에 몰아붙인 채 키스를 퍼붓는 폴. 잔느도 열렬히 응하고 둘은 이름도 모른 채 짐승들처럼 격렬하게 정사를 나눈다. 섹스가 끝난 뒤 둘은 인사도 없이 서로 모르는 남남으로 거리를 나선다.
잔느는 기차역으로 달려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약혼자에게 안기고 폴은 아내가 자살한 여관방으로 향한다. 장모(Rosa's Mother: 마리아 미치 분)는 폴에게 딸의 자살 이유를 묻지만 폴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노하며 소리친다. 폴이 알고 있는 것은 아내가 위층에 세들어 사는 마르셀이란 남자에게 자신과 똑같은 파자마, 똑같은 술, 똑같은 육체를 제공하며 살았다는 것 뿐이다. 혼란에 쌓인 그는 허탈해하며 아파트로 돌아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다시 만나는 폴과 잔느. 둘은 당연한듯이 정사를 나눈다. 폴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잔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는 이름도 없고 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거야." 폴의 고독감에 짓눌린 잔느는 약혼자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약혼자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 폴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시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폴은 이사를 가버렸고 잔느는 빈방에서 흐느낀다.
처음, 아파트를 나서면서 남남으로 돌아섯듯이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세느강변을 걷는 잔느. 그녀에게 다가가는 폴. 폴은 도망가려는 잔느를 따라 탱고 페스티발이 열리고 있는 홀로 들어서며 그동안 그렇게도 거부해 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잔느는 대화보다 둘이 정사를 나눌 수 있는 호텔을 원한다. 폴은 잔느를 업고,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는 곳으로 걸어나가 미친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까보이기까지 한다. 폴의 슬픔과 삶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 잔느는 폴의 파행적 행동에서 도망가고 싶은 뿐이다. 잔느는 폴을 버려둔 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 뒤를 쫓아 달리는 폴. 드디어 폴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잔느를 붙잡는다. 비명을 지르며 폴의 손을 뿌리치는 잔느. 잔느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의 유품인 권총을 손에 쥔다. 뒤따라 들어온 폴은 잔느에게 다가가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잔느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폴은 비틀거리며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자신이 씹던 껌을 붙이고는 쓰러진다.
폴의 죽음을 보면서 잔느는 미친듯이 중얼거린다.
"난 저 사람을 몰라. 저 사람이 날 쫓아왔어. 날 겁탈하려고 했어. 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야. 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23년이란 세월동안 창고에 묻힌 채 영원히 못볼 뻔 했던 바로 그 영화.
이 시대를 통해 에로영화 최고의 걸작이라고 추앙받아 온 화제의 작품으로 당초 극장개봉만으로 관객들과 만나려고 했으나, 많은 매니아들의 요구에 의해 원본 무삭제판으로 출시되었다.
이 영화는 내용으로 보면 단순한 포르노쯤으로 연상될 법하나 베르톨루치 감독은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절대적 상실감과 고독을 그려내는데 연출의 무게를 두고있다. 현대인의 이기주의가 가져올 위기라든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도착적 성행위로 풀어낸 충격적 영상미학은 제작된지 20여년이나 지난 지금도 관객에게 영화읽기의 감동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개봉 후 며칠만에 상영금지가 되어 87년에 와서야 해금되었다. 수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불후의 명작으로 손 꼽고 있으며, 평론가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다.
이중 우리 일반의 가슴에 쉽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원초적 성을 정신적 슬픔으로 끌어 올렸다는 대목일 것이다. 자살한 아내를 둔 중년의 남자. 더구나 그 아내는 한 건물 내에 정부를 두고 살았고 자살한 이유조차 알 수가 없다. 그 남자는 자신이 살 임대아파트를 구하러 가서 처음 만난 젊은 여자와 변태적 섹스를 계속한다. 그리고 결국엔 그 젊은 여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스토리 만으로 연상한다면 지독히도 야한 포르노 영화로 오해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오해 때문에 영화가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었고, 23년만인 96년 겨울에 수입 개봉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선 X등급 판정을 받았고, 미국의 극장 개봉 때는 성행위 묘사 장면 몇군데를 삭제하고 별도의 'R' 등급 버젼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에로티시즘에 관한 영화이지만 성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 그리고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본능의 발톱을 상징과 은유로서 보여주는 베를톨루치의 수작이다.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성적인 억압을 주었고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표출하지만 체제로부터 혹은 사회적 윤리와 자신이 설정한 가치관에 의해 제재 당하고 때론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어떤 아이디어에서 또는 어떤 감정에서 태어났는가?
나는 가구가 없는 아파트에서,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모르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서로 사랑하고,
또 아무것도 서로 모르는채 끝없이 밀회를 이어가는 망상에 빠질때가 있었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바로 이 개인적인 (아마 흔해빠진) 망상을 발전시킨 작품이었네.
시나리오는 최소한의 부분밖에 씌어지지 않았었네. 그걸 킴 아르칼리와 같이 썼던 것은 우연이 아닐세.
그는 나의 편집가일 뿐 아니라, 구성의 초석을 이루는 존재였던 셈이었으니, 충분히 익은 구상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즉흥에 몸을 맡길 수가 없다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완전히 헐리우드화된 장 루쉬 류의 영화로서
호화로운 시네마 베리테인 셈이네.
나는 두 주인공을 폴과 잔느로 부르지 않고 마론과 마리아로 불렀네.
둘은 영화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큰 기여를 했네.
왜냐면 그들이 주인공에게 동조했던 게 아니라 그들이 주인공으로 되었기 때문이지.
이 영화를 이탈리아 어로 재녹음하는 것은 이중의 배신이 되었을 거네. 허구의 영화를 재녹음하는 것이 치욕이라면,
시네마 베리테를 재녹음하는 것은 범죄이기 때문이지.
촬영 과정에서 마론과 마리아는 시나리오상의 인물을 대신하다가 이윽고 그 지위를 빼앗아 버렸네.
마론이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그의 진짜 어린시절 이야기였네.
네브리스카주의 어딘가가 그의 고향인데, 아버지는 바람둥이로 집안에서 난폭하였고
어머니는 늘 술에 절어 있었다더군.
(베르톨루치와의 인터뷰중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Bernardo Bertolucci
1941년 3월 16일, 이태리 파르마 출생. 아버지가 62년 시집 「신비를 찾아서」로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맑스주의자이며 시인, 언어학자였던 파졸리니의 61년 데뷔작품 <아카토네>의 조감독을 거쳤으며, 62년 <냉혹한 학살>로 감독 데뷔를 했다. 24살에 맑시즘의 혁명정신을 담은 <혁명전야>를 만들어 국제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70년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동조자>와 <거미의 계략>을 동시에 발표했으며, 73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통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4시간 10분짜리 대작 <1900>의 제작을 가능케 했다. 87년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9개 부문의 상을 휩쓴 바 있고, 94년에는 <리틀 부다>를 만들기도 했다. <하나의 선택>을 통해서는 직접적인 표현의 절제를 통해 견고한 드라마와 효과적인 카메라 기법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인이 되려고 했던만큼 그의 작품들에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인간에 대한 심층 깊은 고찰이 가득하다. 60년대부터 질풍노도처럼 영화역사를 개척해온 현대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오손 웰즈, 페데리코 펠리니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중하고도 화려한 스타일로 60년대 유럽 예술영화의 뛰어난 수사학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영화적 특징이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동양을 거쳐온 그는 자신의 말 그대로 시대를 요약하는 영화의 이미지를 잡기 위해 노력해온 현대영화의 대표적인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
1924년 4월 3일, 미국 네브라스카 오마하 출생. 가족사로부터 시작된 혼돈스럽고 불안정한 청년기를 보냈는데, 아버지는 극도로 가부장적이고 무감각했고 잔인했다. 한편 어머니는 남편의 극심한 주벽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어머니 역시 배우였는데 어린 말론에게 음악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배울 수 잇게 도와주었다. 이상적인 부모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두 누이 사이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항적인 기질을 항상 품고 있었다. 목적 없는 생활 태도와 어우러져 아버지는 그를 그 자신이 가고자했던 군사학교에 보낼 결심을 한다. 군대 생활의 가혹함은 그러나 그의 절제하기 어려운 충동을 묶어두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얼마간 떠돌다가 뉴욕에 정착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연극에 출연하게 된다. New School"s Dramatic Workshop에 들어가면서 러시아로부터 수많은 메소드 테크닉들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진 유태인 감독 스텔라 앨더의 밑에서 교습을 받는 행운을 얻게 된다. 스텔라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감정의 메커니즘의 본성을 발견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말론 브란도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가르치고 안내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이후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한 것을 비롯, 수많은 연극에서 명성을 쌓았다.
데뷔작은 50년 [그 남자 The Men]란 영화. 이 영화에서 불구가 된 군인 역할을 했는데, 이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마비환자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곧 이어 엘리아 카잔의 [비바 자파타]와 [워터프론트]에 몰두하는데 엘리아 카잔 역시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또 한명의 사람이다. 그와의 이런 호흡은 그로 하여금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했다. 유명한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끊임없이 불의에 대항하여 싸웠는데,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불행한 운명은 그의 행동가적 기질에 불을 붙인 가장 큰 명분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영화에서 멀어지게 된다. 50년대 막바지를 이렇게 방황하면서 보낸 그는 60년대 들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바로 [애꾸눈 잭]이었는데, 그로 인해 어렵고 까다롭다는 오명을 얻기 시작했다. 이즈음 타히티 섬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보여 그곳의 문화와 주민들을 낭만적으로 미화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작은 섬을 사서 그 곳을 태티아로아라고 불렀고 그곳을 자신에게 맞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1970년대에는 다시 그의 전성기. 영화 [대부]로 두번째 오스카상을 타게 되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에서 열정은 폭발하듯 스크린에 발산된다. 자전적이며 심리적인 캐릭터 분석 영화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그가 뛰어난 연기자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불행이 닥치는데, 살해된 아들 크리스티앙의 재판과 딸의 계속된 자살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언론은 그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성품으로 자녀들의 불행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퍼부었고, 그 자신 또한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95년에서도 또 한번의 재기를 시도하는 데 바로 [돈 쥬앙], 작품성이나 상업성 양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아들뻘인 조니뎁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엄청나게 뚱뚱해진 몸으로, 그것도 나이 70에 브라운관에 재기한 말론 브란도,
그는 고인이 된 지금도.. 변함없이 연기자들의 대부이자 본보기, 남자배우들이 넘어야 할 산맥, 심지어는 1세기에 한 번뿐인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코폴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베르톨루치 등 많은 거장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했던 배우이다.
(각종 영화 사이트와 책에서 참고)
[라스트탱고:무삭제판 DVD]
* 아직 개봉을 하지 않은 상태..ㅡ.ㅡ;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무삭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탱고를 추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