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미국의 중서부인 미주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St.Louis)에서 아버지(헨리 엘리어트)와 신앙심이 독실한 어머니(샤롯 스턴즈)사이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엘리어트의 집안은 금욕과 검소한 생활의 실천을 강요하는 엄격한 전형적인 기독교 집안(Unitarian파)였으며 특히 그의 조부 윌리암(William Greenleaf Eliot)은 세인트 루이스(St.Louis) 에서 자신의 기독교적 이상실현을 위해서 노력했으며 최초로 유니타리안 (Unitarian) 교회를 설립하고 나아가서 그곳에 워싱턴(Washington) 대학까지 설립했습니다.
이러한 검소하고 금욕적인 분위기는 젊은 시절 종교를 불신하고 벗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엘리어트는 영국 국교로 개종해 독실한 신앙인으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엘리어트는 하버드(Harvard)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소르본느(Sorbonne)대학에서 1년간 프랑스 문학과 철학 과정을 수료했고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 형이상학, 논리학, 심리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으며, 옥스퍼드(Oxford)에서 1년 동안 철학을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논리학적 연구는 엘리어트의 시 작품전반과 비평영역의 사상적 기반이 됩니다.
1922년 The Waste Land <황무지>를 발표함으로써 그는 현대시의 기수가 되었다. Eliot 는 주로 현대인의 부패, 타락, 절망, 불안, 초조 등을 주로 다루었으며, 은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난해하다. 그는 종교적인 세계관 즉 카톨릭적 사고를 갖고 있었 지만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는 상징주의도 병존한다. 그는 종교적 의미 즉 선악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예술을 매체로 하여 각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927년 영국으로 귀화했고,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5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T. S. 엘리어트는 ‘문학의 독재자’란 칭호를 얻을 만큼 20세기 전 반의 영미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노쇠기에 접어든 낭만주의 전통을 대신해 까다롭고 복잡한 지적인 시로 영미 시단의 새로운 전 통을 수립했다.
비평에서도 지적 세련미를 앞세워 과거 영문학 내지 유럽문학 전반을 조직적으로 검토하면서 새로운 문학 전통을 건져냈 다. 그의 작품이나 평론엔 시대정신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하버드와 소르본,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엘리어트가 런던 에 정착한 뒤 최초로 발표한 시는 〈프루프록의 연가〉다. 그의 초기 시는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상실한 현대인의 의식과 너저분한 도시 풍경이 의식에 미치는 우울함을 반어적 표현으로 담아냈다. 〈황무지〉는 이런 현대생활의 고독과 황폐함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국 문학평론가인 스티븐 스펜더는 〈황무지〉의 호소력을 “우리 모두가 폐부 속 깊이 느낀 사실적 심리를 적확하게 그려냈기 때문” 이라고 분석한 뒤 ‘스타킹과 슬리퍼와 속옷과 콜셋이 널린 너저분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타이피스트와 여드름쟁이 점원의 정사’를 사실성의 백미로 꼽는다. 하지만 〈황무지〉는 여성 점술가에서 소다 수에 발을 씻는 거리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여러 단면을 담 아낸 ‘현대성의 엔솔로지’라 할 수 있다.
〈황무지〉가 물꼬를 튼 덕분에 이때부터 도시의 경험이 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출발이다. 물론 〈황무지〉가 현대생활의 묘사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서구문 명에 대한 진단서이기도 하다. 스펜더의 지적대로 〈황무지〉는 현대 도시의 병적 징후를 통해 프로스트의 〈소돔과 고모라〉와 헤르만 브록흐의 〈몽유병자〉, 슈펭글러의 〈서구문명의 몰락〉처럼 문명의 종말과 악의 창궐을 냉철히 조명하고 있다. 〈황무지〉는 현대성에 대치되는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의도로 인유 법을 쓰고 있다.
434행으로 이뤄진 이 시엔 35명의 작가에게서 차용 내지 개작한 내용이 담겼다. ‘아름다운 여인이 실수를 하고/홀로 방 안을 서성일 때면,/기계적인 손으로 머리를 빗으며/축음기에 레코드판을 걸어놓는다.’ 피곤에 찌 든 한 타이피스트가 정사를 끝낸 뒤의 모습을 그려낸 이 구절의 첫 행은 골드 스미드의 시극에 나온다. 빌려온 시행은 과거와 현재의 비 교를 자극해 현재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인유법은 과거를 높이고 현재를 낮추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골드 스미드의 시구 역시 과거에 대한 비판으로도 작용한다. 이제 너저분 한 정사의 묘사는 더 이상 문학적인 회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인용된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은 물론 기독교나 불교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대의 혼란을 매개로 삼아 서구 전통의 쇠퇴와 서 구정신의 무력함을 극명히 드러내려는 게 〈황무지〉의 본체인 셈이 다. 〈황무지〉가 현대문명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못한 채 ‘무너짐에서 이러한 조각들을 건졌노 라’란 유희와 절망이 섞인 인용구의 혼란으로 끝나는 이유도 그 때 문이다.
사실 〈황무지〉는 사사로운 감정을 직접 노출 시키지 않은 극히 객 관적인 시이면서도 시인의 깊은 감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엘리어트 는 단테의 시가 개인적인 고뇌에서 우러나왔으면서도 보편성을 지니 고 있다고 분석한 적이 있는데 〈황무지〉가 그에 가까운 시다. 하지만 엘리어트는 현대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심판이 아니라 심판 이전 의 정신적 혼미와 고뇌에 대한 기록인 〈황무지>를 분계점으로 하 여 보다 확실한 믿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황무지〉는 최초로 데크레아숑-창조된 것과 아직 창조되지 않은 것이 어루러진 세계-의 현실을 증언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때문에 어 떤 믿음의 계시도 아니며 허무적인 파괴도 아니다. 다만 믿음과 허무 가 혼재한 불확실한 지대에서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보려는 현대인 의 현실과 형이상학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어트는 현대의 마음을 읽어낸 몇 안 되는 문학가 중 한 명이고,
〈황무지>는 그 마음에 관한 증언이다.